• ▲ 제주지방법원 전경 ⓒ노재균 기자
    ▲ 제주지방법원 전경 ⓒ노재균 기자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임재남)은 19일 살인의 공소사실로 기소된 30대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의 피고인 A씨에 대해 징역 16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1월 22일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 30분 사이 피해자 B씨가 거주하는 제주시 연동 소재의 한 주택에서 B씨를 주먹과 발로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

    A씨의 폭행으로 B씨는 혼절했으나 A씨는 이러한 B씨에 대한 어떠한 구호조치도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B씨 옆에서 취침했고, 1월 23일 오후에 기상한 A씨는 B씨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자 비로소 지인 C씨를 통해 경찰에 신고했다.

    피해자 B씨는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뇌 지주막하’ 출혈로 사망했고, 경찰은 A씨를 살인의 혐의로 입건했다.
  • ▲ 제주지방검찰청 전경 ⓒ노재균 기자
    ▲ 제주지방검찰청 전경 ⓒ노재균 기자
    취재 결과 A씨 측은 수사기관에 △A씨에게는 B씨를 살해할 동기가 없었고 △원인행위인 A씨의 B씨에 대한 폭행과 그 결과인 B씨의 사망의 발생 사이의 시간적 간극이 존재하며 △피해자가 의식을 찾지 못하자 피고인이 경찰에 신고를 한 사실 등에 비춰, A씨에게는 이 사건 범행 당시 B씨에 대한 ‘살인의 고의’가 존재하지 않아 A씨를 ‘살인죄’로 의율할 수 없다는 법리를 전개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검찰은 A씨가 B씨에 대한 폭행을 행사할 당시 A씨에게는 B씨를 살해하겠다는 인식과 B씨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존재했다고 판단, A씨를 살인의 죄명으로 법원에 공소를 제기했다.
  • ▲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출입문 ⓒ노재균 기자
    ▲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출입문 ⓒ노재균 기자
    공소제기 후 A씨 측은 이 사건에 관해 피고인의 피해자에 대한 ‘살인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피고인을 고의의 범죄인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고 △고의의 기본범죄인 ‘폭행’의 결과가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중한결과’로 발현된 이 사건은 고의의 기본 범죄로 중한 결과를 예견할 수 없었으므로 기본범죄의 과실과 중한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이 되지 않아  ‘결과적 가중범’ 중 하나인 ‘과실치상’으로 의율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A씨가 B씨에 대해 폭행을 행사한 이후 B씨가 사망에 이르게 된 이 사건 경위에 비춰 △B씨가 당시 처한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능력이 소실된 사실 △A씨에게는 B씨가 처한 위험 상황에서 B씨의 생명과 신체의 안위를 보호할 의무(보증인의 지위)가 존재했다는 점 △A씨가 사건 발생 당시 B씨가 처한 위험 상황을 해소할 여력이 충분했던 사실 등을 고려할 때, 이 사건 A씨의 B씨에 대한 폭행과 B씨가 사망에 이른 결과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하고 A씨가 자신의 폭행 후 B씨에 대한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방치한 행위로 인해 B씨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예견할 수 있었면 A씨에게 미필적으로나마 살인의 고의가 인정된다는 법리를 개진했다.
  • ▲ 제주지방법원(오른쪽) 및 제주지방검찰청(왼쪽) 전경 ⓒ노재균 기자
    ▲ 제주지방법원(오른쪽) 및 제주지방검찰청(왼쪽) 전경 ⓒ노재균 기자
    법원은 피고인의 항변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판단의 핵심은 피고인에게 피해자에 대한 ‘살인의 고의’ 존재 유무”라 명시한 뒤, “이 사건 기록에 현출된 사실에 따르면 피고인은 장시간 반복적으로 위험한 부위인 얼굴과 머리를 강도 높게 공격해 피고인이 자신의 행동으로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 가능성 또는 위험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고 설시했다.

    이어 “살인죄는 살해의 목적이나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자신의 행동이 타인을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 이 사건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한 폭행 당시 피고인에게 피해자가 사망이라는 결과에 이를 수 있다는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와 인식이 존재했다고 재판부는 판시했다.
  • ▲ 제주지방법원 층계단에 게시된 전시물 ⓒ노재균 기자
    ▲ 제주지방법원 층계단에 게시된 전시물 ⓒ노재균 기자
    재판부는 “그렇다면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한 폭행을 개시할 당시 피고인에게는 피해자를 살해하겠다는 ‘확정적 고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행위로 피해자가 사망할 에 이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최소한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고 판단, 이 사건 결과 발생에 대한 피고인 A씨의  ‘미필적 고의’가 존재했다고 판단했다.

    끝으로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은 가장 존엄한 가치로서 살인죄는 이런 가치를 본질적으로 침해해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주는 것으로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중대 범죄다”라 강조한 뒤 “피고인은 2시간 30분 동안 무자비하게 피해자를 폭행하고 구조하지 않은 채 잠을 자는 등 장시간 방치했다”는 사실을 주지한 뒤, “피고인의 계속된 폭행으로 피해자는 비명을 지르며 극도의 공포 속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에게 징역 16년 형을 선고하는 것으로 판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