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학박사‧문학평론가‧시인 양영식.ⓒ이인호 기자
    ▲ 문학박사‧문학평론가‧시인 양영식.ⓒ이인호 기자
    여성학 R 강사의 아버지와 우연한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근심 걱정 없이 자란 미모의 유학파 막내딸이 사회적으로 선망을 흠뻑 받고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한 내 말에 친구는 자네의 생각은 부적절한 하나의 가설적인 피상적 편견이라며 미덥지 않은 듯이 반박을 하였다.

    시대의 중심에 선 미혼의 여성학자로서 자존감으로 당당하고 앞길이 막힐 것이 없는 그녀와는 달리 부모의 생각은 대중을 사로잡는 딸의 논리와 언질에 도무지 발육 부진상태의 거푸집 지성으로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풋내 나는 인생이라며 한탄만을 토로하였다.

    학자의 지적 탐색과 상상력은 윤리적 허용 범위를 벗어난 학문적 표현에선 잘도 세밀화 내 건만 인간이 지닐 보편적 상정(常情)에 대해선 굽 떠 잘 모르는 딸의 처신에 대해 토스토에프스키의 ‘인간의 실존적인 은혜를 모르는 두 발 달린 동물 ’일 뿐이라는 담론에 빗댐을 계속하였다

    그러니까 타인의 존재와 고통은 내 자유보다 앞세울 줄 알게 될 때에서만이 학문연구에 있어서 자유의 진정한 대위 적 삶의 고뇌를 밝힐 수 있음을 부연하며, 네팔의 한 선지자의 禪 문답을 소개하면서 요는 나 자신의 생명은 나 하나에서 시작해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오롯이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나와 연결된 다른 존재들 우주적인 생명체와 연결망의 근본이 되는 부모의 회한과 고뇌 및 이해는 물론이며, 또 시공( 정신과 물질)을 초월한 절대인 보편적 진리( 성적 기행 배격)에 감사하고 사회적 책무에 학문의 뿌리를 둬야 함을 강조하며 열변을 토하였다.

    그런 후에서야 비로소 누구라도 관심 분야를 들어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목표하는 길이 순조롭게 드러나 궁극에 이르러서 모든 통로가 하나로 통하게 되는 ‘순환적인 역사’ 통로 속에서 절대의 경지인 ‘내’가 ‘너’로 인해 ‘나‘가 되는 공공선의 삶에 융합의 길이 된다는 점이었다.

    하니까 학문의 유익한 역할은 나와 관계하고 있는 내 가족과 인류 그리고 다른 지구상의 모든 자연과의 고리인 생명과의 연결을 통해 생동감으로 이루어 낸 나는 이 자연계에서 은혜를 받은 후 생명의 흐름을 지속하다가 그 원류로 다시 돌아가는 자연 속의 한 순환 존재인 원자일 뿐이기에 반드시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존재 보상을 실천해 옮김이 올바른 순리가 되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아무쪼록 독선과 광신(狂信)의 견지가 병적인 상태가 아니라면 모름지기 태어나 애를 낳아 길러 보지 못함은 ‘人生’을 논할 자격이 없음은 물론이고, 시간 속의 거룩함(보편적 사회 현상에 순응하는)으로 인간미 넘치는 삶의 가치로서 또는 세상과 소통되는 가운데 이룩될 공동선의 으뜸 규범인 ‘내 헌신=희생’의 고양(高揚이란 표어를 펼쳐 들어내 보임이 無慾의 일 이 될 것이리다.

    이와 함께 친구는 내게 ‘이천 삼백 년 傾, 이 지구상에서 멸종할 최초의 민족은 한민족인 우리가 될 것이라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데이비드 쿨만 교수의 주장인 자연의 진리를 떠올려 보라라고 설교하며 학자의 학문연구란 인류의 현실 난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는 게 진정한 학자의 길이며 도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치 자기가 극소수의 사회 지도자적 기만적인 삶의 와중에 사회를 향해 온갖 주장으로 현학적인 비난을 일삼으며 혼자만의 안락한 삶을 향해 자기의 유익만을 추구할 뿐, 소아병적인 이익에 편승하는 사회적 이슈엔 크게 분노하나, 공화주의적 책임 소재에선 나 아닌 남이 지는 것 나는 오직 즐기기만 하면 그만이란 사념에 사이비 학문적 탐색만을 찾아서 허둥대는 무모한 삶의 소모적인 실체라고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인간은 ‘무지한 상태로 남을 순 있다 하지만 무지하게 만들어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딸의 지적 열정에도 불구하고 아노미적인 비사회적 현상을 행하는 자신의 딸이 인간 존엄성과 부활(휴머니즘:결혼과 출산)의 근원적 의미조차도 모른 채 ‘결혼 그것 정말 해야’로 일관하는 위험 성과 가능성(비혼과 비출산 지향)에서 핀 성적 쾌락을 즐기어, 공공선을 향한 합일의 진화된 다른 세상을 그리지 못하고 있을 뿐임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물론 사회적으로 또는 정치적 신념이나 보수 진보의 대립을 넘어서서 자연과 인간이 대립하고 화해하는 상황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주장하며 일관된 역사 인식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용서와 화해라는 보다 높은 차원을 이해해야 함이 우선이라고도 했다.

    이제 결론으로서 삶의 자유와 고뇌의 측면에서 보면, 치열하고 준엄한 인간 정신이 내재해 있는 시간과 장소의 차이와 가치관의 상이성에서도 오욕의 역사 현실을 반성하며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은 쉬운 일이 아님이 분명하겟으나 기성세대의 역사적 진실을 청산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과정의 문제의식으로써 종족 계승의 자유와 고뇌의 차원을 냉엄하게 극복해 낼 인성 교육(仁義禮智)은 중대한 사회적 이슈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