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을에서 전북 최다 득표율로 3선 성공전주을 이성윤 당선인은 2명의 현역의과 싸우며 전북 최저 기록제17대 선거 이후 올해 당선인 득표율 최고 2배 이상 높아지기도
  • ▲ 제22대 총선에서 당선된 민주당 후보 10명이 10일 오후 전북도당 사무실에서 당선 축하 행사를 가졌다.ⓒ김경섭
    ▲ 제22대 총선에서 당선된 민주당 후보 10명이 10일 오후 전북도당 사무실에서 당선 축하 행사를 가졌다.ⓒ김경섭
    10일 실시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결과 전북지역 10명의 당선인 가운데 한병도 민주당 익산을 후보가 최다 득표율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11일 전북특별자치도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한 당선인은 전북지역 10명의 당선인 가운데 가장 높은 87.03%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3선 고지에 올랐다.

    한 당선인에 이어 △윤준병 민주당 정읍-고창 당선인 86.86% △신영대 군산-김제-부안갑 당선인 86.73% △이원택 군산-김제-부안을 당선인 86.63% △안호영 완주-무주-진안 당선인 84.23% △박희승 민주당 남원-장수-임실-순창 당선인 83.83% △정동영 민주당 전주병 당선인 82.08% 등을 기록하는 등 무려 10명 중 7명이 무려 80%를 넘는 득표율로 당선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후로는 △김윤덕 민주당 전주갑 당선인 77.59% △이춘석 민주당 익산갑 당선인 77.11% △이성윤 민주당 전주을 당선자 66.38% 등의 순이다.

    이 가운데 ‘검사 출신’으로 선거 기간 “검찰독재 청산”을 외친 끝에 국회에 입성하게 된 이성윤 당선인이 가장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제22대 총선 득표율은 4년 전에 치러진 제21대 총선과 20년 전인 2004년에 치러진 제17대 총선에 비해 무려 2배 이상 높아진 수치다.

    실제로 4년 전에 치러진 제21대 총선에서 전북지역 10개 선거구 당선인의 득표율은 49%에서 많게는 79%를 기록했다.
    당시 선거에서 전북지역 최다 득표율은 79.63%를 기록한 김수홍 민주당 익산갑 당선인이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김윤덕 민주당 전주갑 당선인 73.57%, 한병도 민주당 익산을 당선인 72.59% 등을 기록하며 득표율 2~3위를 차지했다.

    반면 이용호 무소속 남원-임실-순창 당선인은 49.49%를 기록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이용호 당선인이 기록한 득표율은 전북 10명의 당선인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20년 전인 2004년에 치러진 제17대 총선에서 전북지역 11개 선거구 당선인 가운데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당선인은 78.08%를 얻은 정세균 열린우리당 완주-진안-무주-장수 당선인이다.

    이어 한병도 열린우리당 익산갑 당선인과 채수찬 열린우리당 전주 덕진 당선인은 각각 74.53%, 72.52%를 얻으며 2~3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당시 무소속 후보들이 맹추격전을 펼쳤던 고창-부안에서는 김춘진 열린우리당 당선인이 36.26%를 얻고도 국회에 진출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번 제22대 총선에서 전북지역의 득표율이 20년 전에 비해 크게 높아진 것은 전북이 ‘텃밭’인 민주당의 공천에 대한 갈등이 예년에 비해 크게 줄어든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실제로 제17대 총선 이후 20년 만에 전북 10개 선거구에서 압승을 거둔 민주당의 당내 경선 과정에서 경쟁력이 있는 예비후보들이 경선에서 컷오프된 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경우가 크게 줄었다.

    제21대 총선에서는 10개 선거구 가운데 민주당에서 탈당 후 국민의당을 거쳐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진 이용호 남원-임실-순창 후보가 당선되는 등 일부 무소속 후보가 선전하면서 민주당 후보들의 표를 잠식하기도 했다.

    또 정읍선거구에서 유성엽 전 의원은 두 차례 무소속, 국민의당으로 한 차례 당선되는 등  3선을 엮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2004년에는 열린우리당과 새천년민주당이 경합하면서 표 분산으로 당선자들의 득표율이 크게 떨어지기도 했다.

    이와 함께 집권당인 국민의힘이 16년 만에 전북 10개 선거구에 후보를 공천했으나 민주당 후보에게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 데다 ‘정권 심판론’이 확산하면서 세 확장에 실패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