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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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다른 사람의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대체로 현명하게 판단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문제점도 바르게 판단하지 못할 때가 많음이 사실이며, 자신보다는 타인의 일을 현명하게 추론하고 미화시킴으로써 ‘불신과 역설’ 논리의 합리화 와중 속에서 자기-타인 비대칭의 모순에 빠지는 일이 허다하다.이러한 현상은 ‘어리석음과 지혜’의 비대칭적 추론의 과정에 따라서 발생되기 때문에 현명한 판단을 내리려면 우선 심적(心的)으로 좀 거리를 두면서 객관적인 시각(냉정성)과 침착성을 가져야 한다는 심리검사 결과보고서가 잘 알려주고 있다.예컨대 내가 타인보다 커피를 많이 즐기는 심리 테스트에서 커피를 대하는 ‘나와 타자’의 취향 중 누가 더 커피를 ‘위안의 수단과 방법’으로 느끼는지 하는 여부 외에 또 다른 부수적 기능 등에서 맛·품질 등 커피 본연의 가치에 대한 정확한 요소들을 살펴볼 수 있는 가치관을 지녀야 함에서이겠다.문제는 '나와 타인' 중 더 누가 커피를 더 사랑하고 애용하는 태도를 지녔는지 계량해보아야 할 것이며, 옳고 바른 사실을 입증할 합리적인 판단으로 먼저 나와 타인의 차별화와 진상을 밝혀내 보이면 문제의 핵심이 자연스럽고 쉽게 풀리는 논리에서 알 수 있으리다.위 논리에서처럼 인간의 행복한 삶을 위한 공통의 과제를 찾아가는 합리적 방법으로서 ‘나’와 ‘남’의 관계- 즉 ‘나’는 열림- ‘남’은 닫힘의 상태로 보게 하는 하나의 현상에서 마치 꿀벌이 여왕벌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그 사실들, 그러니까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삶의 의미도 완전히 달라지는 이치와 같음에서이다.요는 '나의 이익- 타자 (국가) 이익과의 동일시화 과정들, 인생 확장성에서 본 미디어 즉 정보의 자연스러움과 인간과의 단절된 관계에서 거리 두기와 다리 놓기를 시도해 보면 인간의 뇌 기능은 사랑의 감정을 일으키는 비판적인 사고 능력과 부정적 감정을 관장하는 뇌의 파동이 억제되고 있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음에서이겠다.그러니까 인간 존재란 스스로가 정한 정의의 규율에 의지하는 한 자신을 향해서는 합리일 터이나 타자에게는 비합리적 사실도 자기에게 유리하게 된다면 자기만의 옳은 ‘진’과 ‘위’의 논리로 현실을 판별하려 하려 하니 도대체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하는 의문만 크게 일게 되리다.헌데, 현실적으로 부적절한 대중심리가 대중 속에 만연되는 심각한 사회적 이슈에서 사회의 올바른 상황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음에서도 범용함으로 특별하게 허위의 질서를 짜 맞추며 거짓이 판을 치는 일련의 사회적 현상들이 일어난다면 필요한 것은 사회적 혁신이 가장 급선무가 됨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리라.그런데, '카시러'가 가정한 ‘이성(理性)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는 기호 혹은 상징(symbol)’에서 나타나는 인간 능력의 여부를 살펴보면, 온갖 상징과 기호가 난무하는 진상(실례: 외모지상주의)으로서 서양의 ‘미(美)’만을 추종하는 추세는 예컨대 한국미(三黑, 三白, 三紅)의 신선한 인상과 균형 잡힌 자연미를 깨닫지 못함에서 오는 것이라 하리라.그러함에서 본 큰 빛의 이익만을 향해 몸부림을 계속하는 이카로스의 ‘상징성’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라 함에서, 몽매한 환각(혼란)의 어둠으로부터 나와 인간의 의식에 밝은 빛을 비추며 오성(悟性)을 자극하는 삶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데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어야 할 ‘상징성’의 참 의미를 찾아내야 함에서 더욱 그렇다 하리다.한편으로 진화생물학의 보루인 인간 지성에 대하여 파멸의 연쇄반응 발화점들에서 원자의 ‘소립자’가 부딪히고 깨지고 핵분열되듯 인생도 숨가쁘게 이슈화되어 연쇄반응 속에 명멸해 가는 것이라 하리라.따라서 인간세계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중력장의 블랙홀(희노애락의 작용) 현상이 매우 높아지면서 진화되는 것일 터에서, 사람은 살아 있는 것, ‘죽은 것은 주검’ 살아 있는 것의 ‘살’인 그것은 유기체의 삶으로서 상징 기호이며, ‘살’이 숨 쉬는 것을 멈춘 육신은 썩어 소멸할 뿐일 터, 지능을 '외제(外題)화'할 수 있는 삶이란 영혼과 육체가 결합된 하나의 과학적 유기체 속에서 완성된 '지성'이 미래와 연결하게 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리.양영식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