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분리대 따라 보행하는 것까지 운전자가 예견하고 회피할 수는 없어”운전 중 중앙 분리대 따라 보행하던 치매 증세 80대 충격한 피고인 무죄 선고
  • ▲ 전주지방법원 ⓒ노재균 기자
    ▲ 전주지방법원 ⓒ노재균 기자
    전주지방법원 형사6단독 재판부(재판장 김현지)는 19일, 지난 2023년 12월 23일 완주군 상관면의 한 도로에서 중앙 분리대를 따라 걷던 80대 피해자를 차로 치어 숨지게 한 공소사실(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로 기소된 피고인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숨진 피해자는 사고 당시 치매 증세를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피고인이 이 사건 교통사고 발생 당시 운전자로서의 주의 의무의 준수 여부와 해당 교통사고를 예측하고 회피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검사와 피고인 측의 첨예한 법리다툼이 펼쳐졌다.
  • ▲ 전주지방검찰청 ⓒ노재균 기자
    ▲ 전주지방검찰청 ⓒ노재균 기자
    피고인 측은 수사 단계에서 1심 법원의 판결 선고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과실치사는 원인행위가 되는 고의로 행한 기본범죄가 예상하지 못하였던 중한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될 경우 성립되는 범죄”라며, “수사기관이 이 사건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라 주장하는 피고인이 운행하던 차량과 피해자가 충돌한 행위가 피고인의 고의에 의해 성립된 범죄인지의 여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는 변론을 견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이 사건 발생 경위에 비추어 피해자가 중앙분리대 부근을 보행하는 것까지 운전자인 피고인에게 예측을 요구하는 것은 일반적 경험칙에 부합되지 않는다”며, “이와 같은 사정을 고려할 때 피고인이 이 사건 발생 당시 운전자가 지켜야 할 ‘통상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이 사건의 교통사고 발생 당시 피고인에게는 피해자를 상해 내지 사망에 이르게 하려는 의욕 내지 인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할 것이므로, 수시기관이 이 사건 원인 행위라 특정한 교통사고의 발생에 대해 피고인의 고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법리를 전개했다.

    또한 “사건 당일 일몰 시각이 17시 22분이었고 사고 발생 시각은 19시 5분이었으며 사고 현장에는 피해자를 비롯한 피아의 식별이 용이한 가로등 등의 시설이 미비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러한 상황과 사건이 발생된 시점에 피고인 차량의 운행 속도는 83.2km/h로 이는 규정 속도인 80km/h보다 불과 3km/h 정도 빠른 속도였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피해자에게는 이 사건에 대한 회피가능성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고 봄이 온당하다”고 주장했다.

    피고인 측 변호인은 이러한 변론과 법리를 종합하여 재판부에 “이 사건 결과 발생의 원인은 피고인이 운전자로서의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음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중앙 분리대 부근을 보행함으로서 발생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공판심리의견’을 개진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 ▲ 전주지방법원 청사 ⓒ노재균 기자
    ▲ 전주지방법원 청사 ⓒ노재균 기자
    법원의 판단은 피고인의 이 사건 교통사고 발생에 대한 회피가능성 유무에 방점을 두었다.

    재판부는 △운전자에게 차량의 운행 중 보행자가 중앙 분리대를 따라 걷는 상황까지 예측을 요할 수 없다는 점 △사고 당시 일몰된 상태로 사건 현장에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던 사실 △어두운 도로에서 차량 전조등을 사용해 장애물을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은 약 40m인데 교통사고 당시 80㎞/h가 넘는 속도로 운행하는 차가 보행자와 충돌 40m 앞에서 보행자를 인지해 충돌을 피하는 상황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 △사고 당시 피고인이 차량을 운행한 속도는 83.2㎞/h로 제한속도인 80km/h를 준수했다고 하더라도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드는 점 등을 판결의 이유로 거시했다.

    이어 “교통사고에 있어 ‘주의의무의 준수’는 운전자에게만 요구되는 사항이 아니다”라며, “판례가 견지하는 ‘신뢰의 원칙’은 운전자 뿐 아니라 보행자에게도 준용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사고에 한하여 피고인이 피해자의 돌발 사항을 예견하거나 사고 당시의 도로 환경 및 피고인의 운전 상황 등에 비추어 이 사건 교통사고 발생을 회피하지 못함에 있어 피고인에게 귀책이 존재한다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끝으로 재판부는 “이상과 같은 사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피해자가 사망이라는 결과가 피고인이 운전 중 준수해야 할 ‘주의 의무 위반’으로 인해 발생된 것이라는 인과관계가 입증되었다 할 수 없으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 ▲ 대법원 청사 ⓒ노재균 기자
    ▲ 대법원 청사 ⓒ노재균 기자
    신뢰의 원칙은 과실범의 주의의무 한계를 설정하는 법리로, 교통규칙을 준수한 운전자는 다른 교통 관여자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교통규칙을 온전히 준수할 것이라고 신뢰하고 있으면 충분하며 다른 교통 관여자가 비이성적으로 행동할 것까지 예견해 이에 대한 방어조치를 취할 의무가 없다는 이론 중 하나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오토바이를 약 50m 전방에서 최초로 발견하였으나 확실한 상황판단이 되지 아니하여 도로의 우측부분으로 진행하다가 약 30m전방에 이르러 위험을 느껴 핸들을 우측으로 돌리면서 급제동조치를 취한 결과,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충돌할 때에는 승용차가 더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도로의 우측 끝부분에 거의 정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토바이가 교통법규를 어겨 도로의 좌측부분으로 진행하여 옴으로써 승용차와 충돌하게 된 것이므로, 피고인에게 자동차운전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고 판시(대법원 1992년 7월 28일, 선고 92도1137 판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