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박사 양 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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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Culture : 영·프)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Cultura'에서 온 말이다. Wundt는 Cultus라는 어휘에서 유래된 종교 행위와 토지의 경작, 파종, 수확 등의 농업 행위 등 두 기능의 의미를 지닌 정신적이며 물질적인 요소로 정의한다.이에 반해 Herbart는 '문화란 인간의 정신적 요소만을 가진 것이다'라고 하고, Rickert는 가치를 기준으로 한 정신적 또는 물질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라 하면 모든 것이 ‘문화’라고 했으며 특히 정신적인 면에 방점을 두었다.이에 더하여 Ashlay는 문화의 요소를 문학·미술·과학 등 철학적 요소로서 문명의 작은 한 부분이라고 주장하며, 문화의 문제에서 한 걸음 나아가 정신적 비중에 의미를 둔 문명의 한 부속물로서의 경향들이라고 생각하고 있겠다.그러므로 문화는 한 민족과 국민 즉 인간의 집단적인 생활을 토대로 하면서 발전한 점에서 문화의 발전 주체는 민족이나 국민이기에 민족 문화는 끊임없는 새 빛의 발휘 과정에서 진화하고 발전해 나아가는 것이라 하리라.이와의 관련성에서 문화는 인간이 생각하며 행동하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궈낸 총체적인 창조행위의 발현들로써 삶의 보람과 행복이 결정되는 욕망과 욕구 영역에서의 문화적 의미는 참 광범위한 다의성을 지니는 것일 터이리라.이렇듯 다층적인 구조 의미에서의 문화적 고려는 인간 자신이 선택한 방법에서가 아닌 선택된 행동에 의한 것으로서 다층화되면서 진화되고 변해가는 과정으로서 존재물의 총체적 결과물이 되는 것이라 하겠다.그래서 우리는 문화란 명사 앞에 인간, 예술~, 등의 수식어로서 대치하여도 문화와 인간의 관계는 끊임없이 생명력이 유지될 수 있음에서 그 창조적 가치는 ‘만남’ 속에서 형태가 드러나거나 잠재된 감정에 의해 발현되는 게 아닐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리라.왜냐하면 문화의 특성은 붙잡고 행동하는 자에게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곧 인간이 소지하고 있는 잠재력의 발휘와 창의적인 충동에서 온 이것들이 문화적인 내적 가치가 되는 요소의 모든 것의 총화이리라고 할 수 있음에서다.아무리 21c 정보화 시대를 살아간다 해도 인간은 완성된 영장체가 아니라 스스로 성숙을 이루어 나아가는 미완성의 존재이기에 자신의 주관적인 결정과 객관적인 정신 속 공동 제작 관계로서 새로운 '만남'의 현장 및 인간화의 변화를 통해서 끊임없이 이루지는 것일 터에서가 아닐까.고로 문화의 실제적 가치들인 삶의 가치(도덕적, 인격적)는 행복과 기쁨을 창조하기 위한 매개의 역할이 되고 있음에서 잠시 도연명의 생활철학인 귀거래사 중 '부귀(富貴)도 내 소원이 아니고 공명도 기약할 바 아니니, 오로지 자연의 조화에 따라 잠깐 살다 돌아가는 그 전명(天命)을 즐기며 누릴 뿐 다시 무엇을 의심하리까~'라고 함을 떠올려 보기를 권면합니다.우리의 생활 속에서 예를 들면 하나의 ‘산(山)‘이 조그만 산으로 계속 이어져 점차 큰 산이 되고, 산과 산 사이에 동리가 형성되는 등 산세(山勢)의 유연한 '메타포'들이 실생활로 반영됨을 살펴본 후, 그 은유성에서 부드럽게 굽은 곡선은 언어나 동작의 곡선적인 리듬의 자연으로서 나타나는 삶의 현상들을 이해했으면 하네요.아뿔싸, 헌데 삶의 도리이며 사상서인 동양 문화의 원류인 '서경'에서 광범위한 문화적 내용 중 '수(壽)·부(富)·강녕(康寧)·호(好)·수(修)·덕(德)·고(考)·종(終)·명(命)'의 방어적이고 낙천적인 세계관인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미덕을 독일의 문화 비평가 홀츠의 우주관 중 ‘생활의 10%는 나에게서 일어나고, 90%는 그것에 대응하는 것들에서 왔음’의 문화관을 또 기억해야 하겠기에….지금처럼 기후변화와 환경에 눈 먼 와중에서 자연과 철리(哲理)에 반한 탈 자연적인 세상 획일화의 서사(敍事)적인 현실의 문화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이제는 동양과 서양 문화(음양의 조화)가 공존하는 가운데 때론 ‘나를 비우고, 모든 것을 섬기며’ 자연친화적인 문화, 환경과 생활의 기쁨을 누리고자 하려면 융합된 새 패러다임의 문화 아이콘(無爲自然/무위자연)을 다시 정립할 시대가 왔음을 각성하고 성찰해 나가야 할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