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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회 광주비엔날레 필리핀 파빌리온 ‘시간 속의 습작’(Studies in Time)_포스터ⓒ전남광주통합특별시 제공
광주의 5·18민주화운동과 필리핀 현대사가 품고 있는 국가폭력과 민주화 투쟁의 기억이 예술을 매개로 한 공간에서 만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필리핀 국립대학교 딜리만 캠퍼스 미술대학(UPCFA)과 함께 제16회 광주비엔날레 필리핀 파빌리온 ‘시간 속의 습작’(Studies in Time)을 오는 5일부터 11월 1일까지 기록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공동 개최한다고 밝혔다.
전시에 앞서 4일 오후 1시 5·18민주화운동기록관 3층에서 개막행사를 갖는다. 이번 전시는 서로 다른 역사와 공간에서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싸웠던 광주와 필리핀의 기억을 예술 작품으로 연결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기록과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필리핀 작가들의 국가폭력과 저항, 노동과 연대를 다룬 작품을 전시해 두 지역이 겪은 과거의 아픔을 공유하고 미래를 향한 연대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취지다.
기획은 인권운동가이자 필리핀 국립대학교 딜리만 캠퍼스 미술대학 학장인 아들마리 토임 이마오 주니어(Abdulmari “Toym” de Leon Imao Jr.)가 이끈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와 콜렉티브 등 모두 12개 팀이 참여한다. 회화부터 대형 설치와 미디어아트, 퍼포먼스 기록 등 서로 다른 형식의 작품 30여 점을 통해 광주와 필리핀이 공유할 수 있는 민주주의와 저항의 경험을 풀어낸다.
‘시간 속의 습작’이라는 제목에도 과거의 기억과 현재를 연결하려는 전시의 방향이 담겼다. 역사학자 조지 쿠블러가 1962년 발표한 저서 ‘시간의 형상: 사물의 역사에 관한 비평’과 필리핀 혁명가 케리마 로레나 타리만의 2017년 시집 ‘시간의 습작: 새로운 것에 대한 오래된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 전시는 크게 과거의 저항을 직접 경험한 세대에서 이를 이어받은 젊은 예술가, 다시 노동과 연대라는 보편적인 저항의 가치로 흐름을 확장한다.
첫 부분에서는 독재와 국가폭력에 맞선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필리핀 현대사를 되돌아본다. 호세 텐스 루이스(Jose Tence Ruiz)는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필리핀 국가관 대표를 역임한 작가로, 이번 전시에서 1970년대 마르코스 독재정권의 계엄령 당시 정치범과 고문 피해자들에게 바치는 대형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작품 ‘파나굴리스, 시손, 오캄포, 모랄레스 등에게 바치는 경례’에는 붉게 빛나는 투명한 머리를 한 채 전기고문을 받는 남성의 실물 크기 수지 조각상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독재 시기 자행된 국가폭력의 상흔과 그 고통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의 인권 문제와도 연결돼 있음을 드러낸다.
민다나오 출신 작가 페데리코 도밍게스(Federico Dominguez)는 전후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빈민촌 바롱바롱 주민들의 삶과 원주민 투쟁을 작품에 담았다. 안료에 달걀노른자와 물을 섞어 그리는 템페라 화법을 사용해 가난과 투쟁이 이어져 온 지역의 현실을 표현했다. 고(故) 캡 레예스(Cap Reyes)는 연약하지만 동시에 강인한 성질을 지닌 종이를 매체로 삼아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사라져가는 순수함의 궤적을 보여준다.
전시는 이후 과거 세대의 경험을 이어받되 오늘날의 시각언어와 매체로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이동한다. 이데스 마카판판(Ides Macapanpan)은 ‘실종, 미아, 상실’을 통해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로 사라진 피해자, 이른바 ‘데사파레시도’의 존재를 소환한다. 의류와 빛을 이용한 설치를 통해 실종된 이들이 겪은 폭력뿐 아니라 이들을 기다려야 하는 가족들의 상실과 고통까지 담아낸다.
레난 오르티스(Renan Ortiz)는 상업 간판의 미학을 변형한 네온사인 설치 ‘제노사이드 중단’을 통해 제국의 잔혹성을 표현한다.
카를 카스트로(Karl Castro)는 자서전적 기억과 디지털 건축 렌더링, 자수를 하나의 입체 작업으로 결합한다.
제프 카르나이(Jef Carnay)와 라켈 데 로욜라(Racquel de Loyola)는 대학 캠퍼스를 가로지르며 진행한 퍼포먼스의 기록을 통해 개인의 신체와 정치적 공동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다니엘 루이즈 마드리드(Danielle Louise Madrid)의 작업은 필리핀 네그로스섬 사탕수수 노동자들의 현실로 향한다. 사탕수수 생산 주기에 따라 노동자들이 반복적으로 겪는 계절적 기근인 ‘티엠포 무에르토’와 그 속에서 이어지는 생존의 투쟁을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기록했다.
전시의 마지막은 노동과 연대라는 주제로 세대 간 저항의 기억을 연결한다. 필리핀 노동자운동과 연대해 온 예술단체 땀비산 사 시닝(Tambisan sa Sining)과 단체 회장 조 타니에를라(Jo Tanierla)는 포스터와 회화 작업을 통해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변혁의 가치와 일상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저항의 가치를 함께 보여준다.
모녀 관계이자 동료 예술가인 아비 펠릭스(Avie Felix)와 아야 에스게라(Alaya Esguerra)는 시청각 아상블라주 작품으로 변혁과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작품은 슬픔과 상실, 성장의 느낌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며, 여러 가지 물질을 이용해 평면 회화에 삼차원성을 부여하는 아상블라주 기법이 활용된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이처럼 서로 다른 세대와 형식의 작품을 한 공간에 배치해 광주와 필리핀의 민주화 경험이 과거의 역사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인권과 노동, 연대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줄 계획이며, 전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입장료는 무료다. 매주 월요일과 추석 당일은 휴관한다.
김호균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은 “이번 전시로 광주와 필리핀이 기억을 나누고 우정을 다지길 바란다” 며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가 민주화의 기억을 예술적 연대로 승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